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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_사회_정치

민족의 분단과 서러움, 차별의 역사 (재일 조선인)

by 그놈궁댕이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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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분단과 서러움, 차별의 역사 (재일 조선인)

 

 

나는 일본 영화 ‘박치기’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울보 권투부’ & ‘박치기’ 두 작품을 좋아한다.

박치기의 주인공이 혐한 발언으로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일이 있기 전까지 영화 박치기는 나에게 신선하고 때론 슬프며, 한국 사람으로써 뭔가 묵직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재일조선인 학생들이 권투를 시작했던 이유가, 가난하기 때문이였다고 한다.

돈이 없어 다른 운동을 할 수 없었고, 늘 괴롭힘을 당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권투였다고 한다.

 

두작품 모두 ‘제일 조선인‘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나에겐 흥미로운 주제였던 거 같다.

우리 사회는 ’북한‘에 대해 정치적으로 적대하면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서 북한 사람들이 안쓰럽고 불쌍하단 생각이 드는 참으로 묘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아닐까 싶다.

 

 

 

영화 ’ 박치기‘에서 재일 조선인의 슬픔을 몸소 연기한 주인공의 혐한 발언 & 극 중 일본인이 ’ 임진강‘을 구슬프게 불렀던 장면은 많은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영화 박치기를 보면서, 이상한 장면이 하나 있다.

(일본 남자 + 제일 조선인 여자)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된다.

이들은 결국 결혼을 하게 되고, 차별이 없고 풍족한 (북한)으로 돌아가려 한다.

 

 

많은 차별로 고통스럽겠지만, 일본에 사는 제일 조선인이 북한을 행복의 낙원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당혹스럽게 느껴졌다. 

그 설정이 당체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일본의 거짓된 선동과 잘못된 신념 때문이였다는 점에서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1950년대 초, 약 70만명의 조선인들은 일본에 살았다.

대부분 1930년~ 1940년 사이에 일본에 왔는데,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주하거나, 일제에 의해 강제 저임금 노동력으로 끌려왔다고 한다.

 

1951년 재일 조선인들은 공식적으로 일본 국적을 상실하게 된다.

이후 그들은 심각한 차별을 받으며 단순 노동과 불법적인 직업에 종사해야만 했다.

이런 사정으로 일본 좌파들과 연대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들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한 것은 좌파 민족주의자들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실제 이북 출신은 소수였지만 1950년대 말 대부분의 재일 조선인들은 북한 시민권을 선택하게 된다.

이들은 ‘재외 조선민주주의임민공화국민’들이 조총련을 만든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 친북 활동가들은 많은 재일 조선인을 설득해 북한으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하게 된다.

북송자의 숫자는 9만 3000명에 달하는데, 아이너리하게도 북송자의 대부분은 북한에 살아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심각한 차별에 벗어나 자신의 조국에 돌아가 완벽한 새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부푼 꿈과 목적을 향해 북한으로 귀환한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재일조선인은 북한으로 귀환하는데 일본의 우익단체들은 (제5열 : 적과 내통하는 집단)으로 취급하던 재일조선인의 숫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주를 장려 하기 이른다.

 

북한에 귀환한 이들 대부분은 모국의 궁핍한 현실을 보고 아주 크게 실망했다.

동시에 그들은 일본으로 되돌아갈 수 조차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가난한 감옥 국가에 갇힌 이들은 이들은 희망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들은 특권 계층이자 이념 측면에서 불신의 대상이 되며, 북한 내의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이들이 특권층이 된 이유는 일본에 있는 다른 가족들의 많은 ‘송금’을 통해 상대적으로 북한 주민들에 비해 부유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예외적으로 귀환자들에게 일본 친척들에게 돈을 송금받는 것을 허용했다.

일본에서 들어온 송금은 평양의 주요 수입 원천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송금은 바닥이 난다. 이유는 세대교체였다.

귀환 2,3세들에게 얼굴도 한번 본 적이 없는 일본의 친척들이 송금할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재일 조선인들의 젊은 세대는 일본 시민권을 취득하거나 남한 여권으로 바꾸면서, 북한과의 연을 점점 끊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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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 박치기에서 젊은 부부가 북한을 동경하는 모습은

(일본의 극심한 차별을 벗고 싶은 서글픈 마음 & 이상적인 지상 낙원이라고 속여 ‘귀환‘을 촉진한 일본의 극우 세력의 야욕 & 지상 낙원인 모국에 돌아가 이바지하려는 젊은 청춘들의 순수한 애국심)을 통해 만들어진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슬픈 과거사가 아닐까 싶다.

 

 

이제 한국의 국력도 높아지고, 지지하는 세력도 많아졌다는 점에서..우리의 슬픈 근현대사를 되돌아보고, 한많은 과거의 역사를 치유하고 상처를 되돌아보는 그런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개인적으로 '파친코'는 나에게 참 인상적이고 좋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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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가 싸우는 것을 목격했다.

어머니 친구가 “북한을 왜 도와줘야 해?, 우리도 힘들어 죽겠는데...., 지들이 선택한 거 아냐?”라고 말하셨고, 어머니가 “ 내 가족, 내형제들인데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냐?, 미국이 도와주니?”라고 말하시며 막 싸우던 게 생각이 난다.

 

 

그날.. 문뜩 우리 엄마지만...

참으로 멋진 사람이 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록 가난할지라도...

이런 현명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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