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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_사회_정치

김일성은 어떻게 북한을 세웠는가?

by 그놈궁댕이 202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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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어떻게 북한을 세웠는가?

[리얼노스코리아,안드레이 란코프 지음 참조]

 

 

 

 

 

 

<현대의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북한의 과거를 보지 않으면, 현대의 북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북한은 건국 이후 단 한 번도 정부가 주도하고 통제하는 체계적 변화를 겪어본 적 없다.

그러나, 북한이 과거와 그대로라는 건 아니다.

 

김정일 시절과 현대 북한은 많이 다르지만, 그 시절 일어난 많은 일들이 오늘날 북한 사회의 대부분을 결정했다.

 

북한은 건국 당시 소련의 의존국이었으며, 많은 지지와 기대를 받았다.

북한은 스탈린주의 국가의 전형이 되었고, 많은 도전에 불구하고 이 체계는 1990년대 초반까지 별다른 변화와 문제없이 생존할 수 있었다.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일성>

1945년 9월 소련군 대위 계급장을 달고, 소련군 제 88독립여단 제1(한국인) 대대의 지휘관인 김일성은 소련의 증기선 '푸가체프호'를 타고 원산항에 상륙한다. 원산은 당시 소련국이 막 점령한 상태였다.

 

 

김일성은 1945년 당시 20여 년을 외국에서 보내고, 고향에 갓 귀향해 많은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1930년대 중국 동북부 게릴라 지도자로 활약했고, 1940년대 초반 소련군 제88여단 대대장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그는 그해 10월 조선의 소련군 사령부가 들어서는 평양 출신이다.

 

 

그 당시 소련의 힘은 막강했으며, 마음만 먹으면 남한까지 점령이 가능했지만, 미국의 워싱턴과 합의 때문에 남한을 점령하지 않았다. 남한과 북한을 나누는 작업을 2명의 미군 대령이 맡았고, 그 시간은 겨우 30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38선이 나눠지고, 남한과 북한은 소련과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1945년 당시 남한과 북한의 면적은 거의 동일했으나, 남한은 2배 가까운 인구가 있었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 수탈에 의해 산업과 자원은 매우 부실했다.

 

 

 

 

 

 

 

 

<미국과 소련에겐 아무것도 아닌 대한민국>

초기 소련은 한반도 북부를 장악하면서, 단 한 명의 한국어 통역관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군을 상대한다는 이유로 일본어 통역관은 데리고 갔다고 한다. 1945년 대한민국은 소련에게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나라였다. 공식 문서에 의하면 소련은 1946년 초까지 북한에 대한 미래계획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소련과 미국은 자신들의 지배하에 있는 우호적인 정권을 세우려고 했다.

소련은 애초에 북한을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려 하지 않았지만, 시대적 상황 때문에 오직 공산주의 정권만이 세울 수 있었다.

 

문제는 북한에는 공산주의자가 거의 없었다.

조선의 공산주의 운동은 1920년대 초에 시작했고, 마르크스주의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다.

하지만 매서운 일제의 감시로 대부분 외국과 음지에서 행해졌다. 초기 공산주의자는 오히려 서울에 많았다.

소련은 1945년 각지에 활약하는 조선인 공산주의 자를 불러모았고, 많은 지식인들이 미국의 통치를 피해 이상적인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월북을 하게 된다.

 

 

 

 

 

 

 

 

 

 

<초기에 아무 힘도 없던 김일성>

북한에 많은 공산주의 지식인이 모였이기 시작했다.

의외로 가장 늦게 합류하고 가장 적은 힘을 가진 집단이 소련군 소속으로 게릴라 전쟁을 치른 김일성과 그의 일파였다.

 

 

 

김일성은 1930년대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 전투를 했었고, 아주 용감하고 용맹스럽게 싸웠다고 한다. 하지만 규모가 매우 작았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1940년 일본군의 토벌이 심해지자, 생존자들은 국경을 넘어 소련군에 입대하고 미래에 있을 일본군과 전쟁을 대비하게 된다.

 

역사의 장난으로 일본군이 너무 빨리 항복하는 바람에, 김일성은 일제와 더 큰 결전을 참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련군 지휘부는 김일성 출신과 배경에 주목했고 쓸모 있으리라 생각했다.

 

소련군 입장에서 이들은 중국과 조선 출신의 게릴라 전투에 참여했으며, 현재 소련군이기 때문에 소련의 조언자이자 특사로써 북한에 파견을 보낸다.

 

 

김일성은 러시아어를 꽤 잘했으며, 전쟁공도 있었다.

 평안도 출신이었으며, 그 당시 스탈린이 경멸하고 불신했던 코민테른의 혁명가 집단과 아무 연관이 없었다.

 

 

 

 

 

 

 

<인간 김일성의 삶>

김일성은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던 1912년 4월 15일 김성주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930년부터 김일성이란 가명을 사용한다.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 학교를 졸업하고 한약을 제조하고 만드는 일을 하며 부자 집안에 속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기독교 운동가이고 했다.

 

1920년 가족이 중국 동북부로 이주하며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낸다.

부유한 가정 때문에 고등학교까지 졸업하며, 당시에는 엄청나게 높은 교육 수준을 받았다.

 

 

그는 특이하게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가, 교육자의 삶을 살 수 있지만, 그는 1930년 초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며 싸우는 공산주의 유격대에 가담한다.

 

 

김일성은 10년 가까이 중국 공산당원으로 활동하고, 중국의 유격대 초급장교로 복무했었다..

북한은 김일성의 전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1945년 이전의 행적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거나, 모호하게 전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김일성은 ( 부유한 가정 , 일본과의 전투, 기독교 집안, 똑똑한 머리 )를 가진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김일성은 거칠고 고된 삶을 선택한 이유는 그는 이상주의자였고 대의를 숭상하는 투사 기질의 사람이었음 틀림없다고 한다.

 

 

 

 

 

 

 

<공산주의도 결이 다르다>

공산주의는 (유럽 & 동아시아)는 서로 결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유럽은 불평등한 사회를 개선하려 공산주의를 도입했다.

동아시아는 불평등한 사회 개선과 더불어 민족의 부흥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신념도 함께 작용한다.

애초에 소련은 자신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북한 정부를 설립하려 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소련의 꼭두각시가 될 의향이 전혀 없었다.

 

 

 

소련은 초기 북한에 많은 영향을 줬다는 사실은 진실이다.

1945년~1948년 북한은 소련 주도하에 북한 토지개혁법 초안을 작성한다.

스탈린은 19489년 북한 헌법의 초한을 편집하기도 한다.

소련의 헌병은 새로운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체포하여 모두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 버린다.

아주 작은 행적 업무조차 소련의 허가가 필요했다.

 

 

 

 

북한의 토지개혁법 실시로 많은 부유한 지주들이 토지를 몰수당했다.

그들은 38선을 넘어 남하하였다. 1950년 모든 산업이 국유화된다.

특이하게도 김일성은 기독교와 연관이 깊은 집안 출신이지만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잔혹한 박해를 했다고 한다.

1945년~ 1951년 사이 월남한 북한 주민 숫자는 대략 120~15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는 북한 전체 주민의 10~15%나 된다. 정권에 대항할 힘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저항을 애초에 포기하고 이주를 선택 하며, 북한의 동질성은 더욱 견고해진다..

 

 

 

 

 

북한은 소련에 의해 억지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왔다고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비전과 이상에 끌려 환영했고, 전반적으로 자생적이고 독립적으로 생성된 대중 혁명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궁극적 목표는 남북의 통일>

남한과 북한은 유일하고 합법적인 정부라는 강요를 위해 기이할 만큼 과도한 집착을 한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정말로 예민하고 어려운 관계임은 틀림없다..

 

 

1972년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하국 헌법상 수도는 평양이 아니라 서울이였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북한 행정구역 도지사들을 임명하고 있다.

한반도의 궁극적 목표는 남북의 통일이었다..

 

다만 북한의 김일성은 무력을 통해 남한을 통일하기 원했고, 남한의 이승만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625 전쟁이 발발한다.

 

 

 

 

625 전쟁 때 소련군은 지상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북한은 소련이 아닌,  중국의 힘을 빌어 남한을 침공한다.

김일성은 이후 소련의 영향력을 덜 받았고, 지배력이 약화된다.

또한 전쟁 직후 김일성의 개인 권력은 크게 강화된다..

 

전쟁은 미국의 참전으로 결국 38선과 비슷한 휴전선이 생기게 되었다.

휴전 직후 김일성은 자신의 정권에 대항하는 모든 세력을 숙청하고 자신의 왕국을 건립한다.

 

이렇게, 북한의 정권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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