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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_사회_정치

자연을 마음대로 쓰겠다는 인간의 권리(?)

by 그놈궁댕이 202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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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마음대로 쓰겠다는 인간의 권리(?)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참조

자연은 우리 경제 활동의 기본 토대가 된다.

자연에서 제공하는 여러 물질과 에너지를 통해 인류는 풍요로운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다.

 

 

 

1) 자연은 제어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상.

’갈릴레오 갈릴레이, 르네데카르트, 아이작 뉴턴‘ 같은 유명한 학자들은 16세기부터 자연의 법칙을 연구했다. 기존의 교리인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사상을 전복시킬수 있는  여러 자연 법칙을 찾아냄으로 그것을 약화 시킨다.

사실 학자들은 순수한 세상의 법칙에 궁금증을 느꼈을 테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자기 합리화 원칙으로 사용 한다.

인간은 자연의 여러 법칙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말은 자연은 언젠간 정복이 가능하며, 인류 마음대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고, 심지어 자연은 단순한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다. 인류는 자연은 무한하지 않고,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은 100년 전부터 예측했던 일이였다.

지구가 망가지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인간은 눈과 귀를 막고 '경제, 효율, 수익' 만을 외쳐 왔다.

 

 

인간은 자연을 임의대로 개조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구잡이 식으로 헤집고 다녔다.

자연은 본래 스스로 치유 능력이 있었는데, 인간의 개입으로 결국 치유능력이 상실하게 되었다.

결국 자연은 지속적으로 망가지는 멸망의 길을 따른다.

 

 

 

 

 

 

2) 자연의 기본 법칙을 철저히 무시한 인간.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적자생존 이라는 개념을 인류에게 선보인다.

찰스다윈의 처음 의도는 강한 객체만 살아 남는게 아니라, 자연은 환경에 따라 다양한 종을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환경에 적응 못하는 종은 결국 살아 남지 못한다. 우월한 특정 종을 강조한게 아니라, 자연엔 다양한 종이 다양하게 진화해서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다양성에 대한 의미로 진화론을 폈을 것이다.

하지만, ‘적자생존‘은 인간의 이기심을 부축이는 핑계로 전락해 버린다.

오직 효율적인 하나의 객체와 품종만 남기고, 모조리 죽여 버렸다.

하나의 품종의 목적은 유전자의 우월함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이윤' 때문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예를들어 닭은 식용으로 유리한 객체만 남기고, 다른종은 키우지 않아 멸종시켰고, 바나나는 해외로 수출이 가능한 오래 보관이 가능한 객체만 남기고 모두 전멸 시켰다.

이런 소수의 객체들은 의외로 여러 병균과 질병에 취약해 진다.

유전적 완벽함과 강함은 '소수의 강한 종'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종들이 서로 섞이면서 발전 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닭은 ’산란이 가능한 종, 식용으로만 쓰는 종‘ 으로 나눠 아주 비좁은 우리에 가둬 놓고 키우며, 정신이상이 생긴 닭들을 생산한다. 또한 태어난 객체 중 숫컷은 식용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폐기해 버린다.

닭들도 하나의 생명으로써 윤리적으로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잔혹하게 희생 당한다.

그리고 자본가는 이윤이라는 이유로 정당화 된다.

 

인간이 구축한 시스템은 사실 자연 체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연은 다양성을 자랑하며 선순환을 목표로 한다. 즉, 자연은 뭔가를 가져가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것을 반드시 돌려준다. 한쪽만 이득을 취하지 않고 자연은 선순환을 하게 된다.

 

 

인간은 이윤과 효율이라는 목적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고, 부도덕을 합리화 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

모든걸 파괴하고, 기술로 재건한다는 망상에 쌓여 있다.

 

 

 

 

 

 

 

3) 기업은 절대로 도덕적이지 않다.

우리는 과도하게 많은 생산을 한다.

예를들어 의류는 매년 9,200만톤의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

그 중에서 멀쩡한 옷들도 매우 많다. 이유는 유행이 지났거나,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쓰레기의 대부분을 소각한다는 점이다.

소각을 통해서 이산화탄소가 많이 배출되면 결국 온실효과를 극대화 시켜, 전세계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대표적 원인이 된다.

 

소각의 이유는 단지 좀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매립과 재활용 보다, 소각 비용이 훨씬 적다.

이윤을 남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자연을 망치는 ‘소각’으로 결정한다.

 

 

예를들어 아마존은 전세계를 주도하는 일류(?) 기업중 하나이다.

그들은 물류 시스템에 자율 주행 로봇으로 채우고, 사람들을 최소로 고용하며 효율과 비용을 강조한다. 이들은 낮은 법인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조세 피난처’에 지부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탈세하기도 한다.

고용을 줄이고, 다른 사람의 세금으로 사회적 혜택은 모두 얻고, 다른사람을 착취하는 기업의 모습이, 정말 올바른지 자문해야 할것이며, 우리가 그렇게도 칭찬하던 초일류 기업의 모습이 맞는지 자문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는 겨우 '이윤,효율' 뿐인가?

그것도, 극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좌우하는....

 

 

 

 

 

 

 

 

4) 망가진 자연을 대체기술로 복구 한다.

자연을 망가트리고, 그것을 대체 기술로 회복 시킨다는 발상은 애초에 잘못 되었다.

자연의 파괴는 연속적인 문제를 야기시킨다. 자연은 여러 지역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류는 파괴된 자연을 새로운 기술로 그것을 대체할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이 어떻게 환경이 망가진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들다.

 

 

대체기술을 쓰겠다는 말은, 지속적으로 자연을 파괴하겠다는 말과 동일하다.

애초에 자연 속에서 잘 살고 있는 여러 식물과 동물을 모두 파괴한 뒤, 그 대체물로 기계를 만들고 발명하여 복구 하겠다는 발상은 터무니 없다.

 

인간은 ‘효율과 이윤‘ 이라는 핑계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

기술이 정말로 자연을 대체할수 있을 것이며, 자연을 더 파괴하고 기술을 개발해 복구하겠다는 발상은 올바른 생각일지 고민해 보자.

 

기술은 결국 자연의 에너지를 일부 사용해야만 가능하다.

절대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게 아니며, 효율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

 

 

 

 

 

 

 

 

 

5) GDP가 만들어낸 왜곡된 시선

GDP는 국내 총 생산량을 말한다.

결국 이득만 강조하고, 손실에 대해 무관심 하다.

 

경제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가치 없다고 평가 한다.

쉽게 말해 ’깨끗한 공기 & 맑은 물 & 건강한 토양’은 망가져도 아무도 손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를들어 공기가 오염되면 인간은 호흡기 질환이 막연해 진다. 결국 건강에 위험이 되고 그것은 여러 손실이 된다.

 

자연은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한정된 자연을 가져다 쓰면서도 직접적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성장을 분석하기 위해선 ‘총 생산량 & 남은 자원량’을 함께 비교 분석해야만 하지만, 오로지 벌어들인 이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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