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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후기

‘바바리안‘ 누가 야만과 문명을 정의 하는가?

by 그놈궁댕이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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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소개

영화 '바바리안'의 영문 제목은 'Waiting For The Barbarians'입니다.

제목의 뜻은 ’야만인을 기다린다.’ 입니다.

 

원작은 노벨 문학상 작가 '존 쿳시'의 대표작 야만인을 기다리며입니다.

이 작품은 한국의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정식 출간이 되기도 했었죠.

 

이작품은 제국의 변방 즉, 그들이 주장하는 야만인과의 겹점 지역을 통치하는 치안판사의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입니다.

이작품은 매우 무겁습니다.

특히 제국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고 제국에 대한 허상과 위선을 이야기합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반인륜적인 폭력과 불합리성에 대하여 때론 참담하고 무덤덤하게 이야기합니다..

 

 

2. 영화 줄거리

제국의 국경 마을에 통치자 이자 치안 판사로 마크 라이선스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는 심성이 착하고 아주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어느 날 '고통이 즉 진실이며 모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국가안보국의 졸 대령이 마을에 새롭게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도둑질 혐의로 잡혀온 유목민 두 명을 심문이란 이름으로, 잔혹하고 끔찍하게 고문하며 결국 죽음으로 마무리됩니다..

 

 

졸 대령은 원주민 부족이 제국에 대항하고 무장했다는 거짓 자백을 받아내고, 수많은 병력을 모아 부족민들을 포로로 잡아와 감금하게 됩니다.

치안 판사인 마크 라이선스는 제국주의에 대한 심각한 물음과 회의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상실감과 공허함도 느끼게 되지요.

 

그는 결국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졸 대령이 없는 틈에 부족민들을 풀어주고 졸대령과 대립하게 됩니다.

 

마크 라이선스는 우연히 심한 부상을 당한 어린 원주민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그녀를 정성을 다해 치료하며,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그녀와 함께 스스로 고난의 여정을 떠납니다.

 

다른 사람이 시켜서가 아니며, 협박을 당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올바른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정의로운 행위를 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의 모습이 제국주의자 입장에서는 반역으로 보였을 겁니다.

특히 졸대령은 그를 반역자로 보고, 소녀를 고향에 돌려보내며 복귀한 마크 라이선스를 감옥에 가두고, 반역자로 심판하게 됩니다.

 

 

 

 

3. 이 작품의 매력

일단 탄탄한 원작이 있다는 점에서 작품성은 믿을 수 있습니다.

일단 배우들이 하나 같이 훌륭합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조니 뎁’ , 덩케르크의 마크 라이선스’ , 그리고 터넷의 로버트 페터슨’까지

연기력으로 누구에게 밀리지 않을 연기파 배우들이 심도 깊고, 강렬한 물음에 대해 설득력 있게 이야기합니다..

 

 

 

제국 즉, 지성인이라고 스스로 자청하는 무자비한 학살자들과 아무 잘못 없이 선량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말하는 소위 야만인 , 누가 과연 더 나쁜지 무엇이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주인공이 치안판사이며, 매우 정의롭고 선한 타의 모범이 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치안판사를 아주 가볍게 협박하고, 또는 폭력으로 억압하는 졸 대령의 모습을 통해서 정치와 이념이 얼마나 허망하고 공허한지, 그리고 가벼운지를 이야기합니다..

 

 

제국주의와 정치 이념이  단순히 나쁜 게 아닙니다.

그것은 본질은 언제나 이롭고 이상적인 좋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실행하지 않는 거짓되고 위선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하면서 자신의 신념과 이념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악인들 때문에 왜곡되고 변질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4.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

영화 웨이팅 포 더 바바리안은 특정한 나라를 지칭하진 않습니다.

단지 제국이라고 말하며, 그 제국의 기준은 힘이 아주 강하고 여러 나라를 무차별 폭력으로 식민지를 만들었던 보편적 관점에서의 서구 열강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은 다른 나라의 원주민을 굴복시키기 위해 온갖 잔인한 행위를 너무 쉽게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뛰어난 사람들이며, 아주 멋지고 훌륭한 지성인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변방에 살며 힘이 없고, 다른 사람을 특별히 괴롭히지 않는 사람들을 야만인이라 주장하며 무차별 학살과 고문을 자행합니다. 자신들이 정의라고 착각해서 그런것일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잔혹한 학살 행위에 전혀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고통이 곧 진실입니다."

"진실은 그렇게 얻는 겁니다."

<졸 대령 >

 

 

작품을 보다 보면 누가 더 올바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은 자신들이 세계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라고 스스로 치켜세우고,, 세상에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국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했던 일인데 어째서 그렇게 주장하는 위선을 보이는 것일까요?

 

작품에서 나오는 제국주의도 비슷한 맥락인 거 같습니다.

강대국 스스로가 착취를 정당화하고, 누구보다 선한 사람이라고 거짓으로 위선으로 세상을 속이려 하는 게 아닐까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하기 위해, 또는 동아시아 침략의 교두보로 사용하기 위해서, 수많은 철도와 교통망과 항구를 건설합니다.

그러고 전쟁에 패하고 난 뒤에는 우리나라를 발전시킨 장본인이 일본이었다고, 일본 침탈은 한편으로 한국을 세계 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는 괴변을 주장 합니다.

 

그들의 일방적인 시설물 확장과 제한적인 지역 발전으로 한국의 도시 간 불균형은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일본이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했더라면 어째서 전라도와 호남 지방을 철저히 무시하고 부산과 특정 도시 위주로만 지역을 부흥시켰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목적은 철저한 수탈과 전쟁 물자 이송에 있기 때문일 겁니다.

 

강대국의 위선을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바바리안은 우리에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입니다.

힘이 강하고, 세상에 보편적 진리라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올바른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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