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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 소년범죄)의 본질은 사회구조의 문제

by 그놈궁댕이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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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 소년범죄)의 본질은 사회구조의 문제

 

 

 

어리단 이유로 아이를 물건처럼 취급해되 되는 것인가?

개인의 도덕성이 (사회구조 / 사회 윤리)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아이를 편안하게 키울 수 있는 곳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적 구조를 고민한다고 해서 개인에게 도덕적 책임이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개인의 책임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도 함께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아동의 사회적 위치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규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동은 인간의 권리를 가지지만 그 권리를 스스로 충분히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들 18세 미만은 안된다는 사회적 제약과 규칙을 통해 아이들은 미숙하기 때문에 무조건 어른에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존재로 규정한다. 아이는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 철저히 갇혀 있는 존재란 의미가 된다.

 

 

소년 강력 범죄, 즉 촉법청소년 범죄에 초점을 맞춰 처벌 강화를 외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반대편에는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있다. 2018년 기준 1만 8,919명의 아이들의 부모에게 확대 당했다. 하루 평균 52명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맞거나 정신적, 성적 수모를 겪고 있다. 게다가 식사조차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다.

 

요즘 밥을 굶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하지만....

2018년만 해도 지자체 지원을 받는 결식아동은 35만 명이나 되었다.

이는 100명당 4명의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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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010년 이후 급속도로 아동 빈곤율이 낮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청년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크게 증가한 것에 관련이 있다.

많은 청년들이 아이를 낳아서 제대로 기를수 없는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낳으려 하지 않는다.

빈곤률이 줄어든 것은 사회가 올바르게 바뀐 게 아니라, 애초에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도 서로 고통 받는다는 사회적 편견과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동의 개념은 18세기 시작>

필립 아리에스의 저서 1973년작  (아동의탄생)에 의하면 근대 이전의 아이들은 어른의 축소판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아이들을 어른처럼 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아이들을 어른처럼 대접하면 곤란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유는 값싼 노동력 확보에 있었다. 아이들은 미숙하기 때문에 임금을 적게 주는것은 당연하다..

 

 

아동을 어른처럼 대하지 않으며 아이들이 성숙하지 않다는 핑계로 어른보다 일을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임금을 적게 줬다.

아이들은 미래의 노동력으로 국부에 중요한 원천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규율과 통제력에 잘 길들여진 편한 일군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학교가 만들어지게 된다.

 

 

산업 혁명 초기만 해도 사람들은 필요 이상을 노동하며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근대 개혁가들은 대다수의 아동을 수용하는 근대적 학교 교육을 실시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에선 1970년에 초등교육법이 만들어졌다.

이렇듯 아이들의 교육의 시작은 불손한 의도에 의해 만들어졌다.

초등교육법은 자유당의 하원의원 ‘윌리엄 포스터’가 초안을 만들었다.

그는 법의 도입 취지를 이렇게 쓰고 있다.

 

 

“ 우리 산업의 번영이 초등교육을 신속히 시행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교육받지 못한 미숙련 노동자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 세계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근대의 미성숙을 상징하는 ‘아이들‘의 개념은 미래의 착한(?)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만들어졌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값싼 노동력 착취를 위해 발명되었다.

 

 

 

아동보호는 영어로 ( Child Care )이다. 이 말은 1915년 처음 쓰였다.

아동은 근대적 개념뿐만 아니라 아동이 윤리적으로 보호대상이 이라는 발상은 20세기 초반에야 생겨났다.

우리나라도 젊은이, 늙은이처럼 아동을 독자적인 존재로  (어린이)라는 표현은 1920년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 사용했다.

 

 

 

 

 

 

 

 

 

 

 

 

<소유물로 인식된 아이들은 착취의 대상으로 변질 된다>

아동이 애초에 착취의 대상으로 발명되어서 그런 것일까?

아이들을 부모 또는 어른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대부분의 아동 학대가 가정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 중 76.9%가 부모였다.

가족애라는 핑계로 내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며, 필요에 따라 함부로 대하고 또는 편의에 따라 버려지거나, 기분에 따라 망가 뜨려도 되는 사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아동 확대는 그런 가능성이 현실화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가해자 중 징역 10~15년 중징계를 받는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

대부분 5년 이하의 형을 받는다. 아이 너리 하게도 많은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처벌이 가해질 때는 이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며 법정에서 선처를 호소한다는 것이다.

 

 

아동의 존재가 구조적 문제에서 탄생했듯이, 아동의 문제도 구조적인 데서 생겨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아이들은 오직 부모가 키우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회가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다수 존재하는  (노 키즈존)은 철저히 아이들을 배제된 공간이다.

이곳은 아이들에게 어른의 규율을 강요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진입조차 거부당한다.

(노 키즈존)은 아이들에게 그런 규율을 지킬 기회조차 필요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많은 공간은 (유아방, 어린이방)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

심지어 유아방에서 아이가 울면 밖으로 나가 아이를 혼내거나 미안해한다.

아이들은 사회와 이웃이 우리 모두가 함께 키우는 존재라 보지 않는 현상이 반영된 상징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은 아동학대와 아동범죄를 개인의 인성 또는 가족 배경에 비난을 돌린다.

사회적 구조적 문제에 대해선 절대 말하지 않는다.

 

 

 

예)

친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아동 학대를 한 것이다.

아빠가 일찍 돌아간 아이여서 범죄를 일으킨 것이다.

부모의 직업이 불량해서 아이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아이들 문제는 사회에 있고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사항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처벌만을 강조한다.

아이들의 문제는 절대로 사적이지 않다.

 

 

우리들은 ( 입양가정, 재혼가정, 동거 가정, 한부모) 가정에서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친부모들의 학대 비율이 양부모 보다 월등히 높다.

2019년 보건복지부 ’ 아동학대 주요 통계‘를 보면 가해자가 양부모인 경우는 0.3%인 반면, 친부모는 72.3%에 달한다.

 

 

이처럼 사회가 언론이 ( 비혈연관계, 비정상적 가정 )를 강조할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아동학대의 본질을 개인적이며 사적인 영역으로 가둬 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집에 홀로 두고 일하러 가야 하는 외부 모의 문제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아이를 낳으면 양육비와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을 당하는 가족이 있다... 이것도 역시 사회적 문제다.

아이들이 잘 성장하려면 아이들만 잘 성장할게 아니라 어른과 사회도 잘 성장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처벌하기 앞서...

우리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아이는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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